3월 18일(수) 말씀 묵상 - 요 9:35-42
♥3월 18일(수)
*말씀: 요한복음 9:35-42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을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찬송: 어두운 내 눈 밝히사(새366/통485장)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빛에 대해 공부할 때,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아름다운 무지개 빛을 내는 것을 보며 신기했었습니다. 와~ 빛이 내가 보는 것 외에 많은 색깔로 되어 있구나를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참 예쁜 무지개에 감탄할 때, 선생님께서는, 보이는 무지개 색 외에 빨간색의 바깥쪽으로는 적외선이, 보라색 옆으로 또 다른 바깥쪽에는 자외선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본다고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보이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학이 아니더라도 눈에 대해 걱정 없던 저는 노안이라는 것이 시작하는지 글을 읽으면서도 줄이 흔들리고, 먼 곳에 있는 물건도 정확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가끔 생겼습니다. 아는 분인가 하고 달려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전혀 모르는 분이어서 민망하게 돌아섰던 기억도 있지요. 많은 것을 보고 살지만, 잘 못 보는 것도 적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도 맹인인가?(40)’라고 말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눈이 밝은 사람이라 자부했고, 세상에 자신들보다 더 잘 보는 사람은 없다고 확신하던 이들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신들보다 더 잘 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완벽한 시력을 뽐내던 그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눈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41)로 말씀하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죄)는 그들이 보지 못하면서도 본다고 한다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았을 때,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 맹인을 향하여 존귀한 생명, 한 인간으로 볼 줄 몰랐습니다. 그의 고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눈먼 사람이 하나님의 지으신 사람이라는 것을 도무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단지 겉의 부족함, 그것만을 보고 죄로 판단하며 정죄한 것입니다.
그 맹인을 향하여 그들은 ‘그것이 그 자신의 죄냐, 그 부모의 죄냐?’ 물었으며, 예수님을 향하여는 ‘안식일에 일하니 저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고 단언하는 닫힌 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법칙, 자기 교리, 자기 전통...... 지독한 자기 중심성이 바로 그들의 눈을 가렸습니다. 지독한 자기 중심이 하나님도 편협하고 좁고, 사랑 없는 그런 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진짜 신성모독은 여기 보았다고 하나 눈먼 그들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십니다. 또한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죄보다 먼저 그 눈먼 사람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자기가 아닌 참 하나님의 눈을 가진 분, 넓고도 깊은 가슴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한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시는 그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을 보는 눈을 가진 분이십니다.
참으로 어수선한 시대, 정치, 경제, 문화의 위기, 전염병으로 인한 두려움과 방황의 시대에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닮아 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순절, 예수님과 함께 걷기 위해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눈을 가진 신앙인으로 오늘 한발 더 내 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중심을 보시는 주님!
우리가 껍데기만 보지 않게 하소서. 먼저 우리의 흐린 눈, 닫힌 눈을 알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고, 예수님을 닮아 사랑으로 보게 하시고, 그 아픈 마음을 보게 하옵소서. 생명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