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목) 말씀 묵상 - 요 10:22-42

♥3월 19일(목)

*말씀: 요한복음 10:22-42
37-38절,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찬송: 저 장미꽃 위에 이슬(새442/통499장)

“나를 믿지 말라.” 세상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37)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보다 그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 우리는 이단의 적나라한 모습을 봅니다. 사실 기독교 역사 속에 숱한 사이비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느냐 물으면 그들은 뭐라 대답할까요? 주저주저할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더 잘 믿는다고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자신의 물질도, 직장도, 가족도, 생명도 내어 놓으며 그 믿음이 아주 크고 대단함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것이 맹신이며, 그 위험성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다만 은총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할례나 그 어떤 일/업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그 믿은 자체가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행함과 업적을 먼저 전하는 것은 갓난 아기에게 거친 밥을 먹이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를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믿음’을 강조한 바울의 편지를, 마치 그리스도인은 아무런 행함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이지요(벧후3:16).

사실 바울은 그런 무책임하고 무지한 신앙을 경계하고 또 경계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을 절대 나누어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38)고 오늘 말씀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행하심 안에 믿음의 핵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행함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는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고 있습니까? 세상보다 가까운 내 가족, 내 이웃, 내 믿음의 형제, 자매들은 사랑하고 있습니까?

바로 이 사랑에 믿음의 이유와 방향이 있습니다.

신앙인과 교회는 이 어려운 시기에 맹목적 믿음이 아닌, 이 세상과 이웃,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행함이 우리 속에 있는지, 그 믿음이 바른 이유와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시험 당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14:12)

예수님께서 하신 그 일을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을 위한 사랑이 살아 숨쉬게 하며,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보일 수 있는 복된 삶, 능력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한 십자가를 묵상하는 이 계절에, 그 사랑의 예수님을 믿음과 또 삶을 따르는 성실로써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참 믿음의 삶을 우리가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의 믿음의 이유와 방향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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