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목) 말씀 묵상 - 요 13:1-17, 31-35
♥3월 26일(목) 말씀 묵상
*말씀: 요한복음 13:1-17, 31-35
1, 34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찬송: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새290/통412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새304/통404장)
사람이 죽기 전 인생의 마지막에 하고 싶은 일은 정말 자신에게 소중한 일일 것입니다. 유명한 재벌 회장이 운명할 때,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의 대답은, “따뜻한 쌀밥 한 그릇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다이아몬드같은 보화도 아니고, 온갖 만난 음식의 진수성찬도 아닌, 달랑 쌀밥 한 그릇이 대한민국의 최대기업 회장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바람, 이루지 못한 소원은 ‘따뜻한 쌀밥 한 그릇’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정말 소중한 것은 멀고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소중한 일상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지지 못한 것들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소중하고,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작고 평범한 일들이 중요하고, 만나지 못한 사람들보다 지금 부대끼며 지지고 볶는 사람들이 정말 귀한 것이 아닐지요?
우리에게 없는 것들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불행해하기 보다는, 지금 있는 작고 소박한 것들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기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바로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이게 무슨 새 계명입니까? 이건 너무도 오래된 골동품처럼 낡은 계명입니다. 모두가 알고, 옛날이나 지금 나의 삶에서 사랑의 약속은 흔하디 흔합니다.
세상의 위인과 성현치고 사랑하라고 하지 않은 이가 있습니까? 어떤 종교든 사랑을 말하지 않는 종교가 있습니까? 하다못해 거의 모든 유행가 가사도 바로 사랑입니다.
이렇게 흔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전하는 ‘사랑’이기에 예수님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때론 잔소리처럼, 혹은 이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그냥 나가버리는 관심 갖기 어려운 가벼운 말씀으로 들리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흔한 말씀을 결코 가볍게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주 절박한 호소입니다. 이 ‘서로 사랑하라’는 목숨을 걸고, 혼신을 다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13:1) 이 긴박한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일을 하십니다. 마지막 식탁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곧 배신하고 떠나갈 제자들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 발을 어루만지는 스승의 애틋한 마음을 참담히 짓밟아 버릴 것입니다. 베드로는 비겁하게 예수님을 도무지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겠지요.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마지막 시간에 제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요, 종말론적 계명입니다.
배신하고 부인하는 세상의 일상을 거부하고, 다시한번 너무 익숙해져 잔소리로 들리고, 의미 없어져 버린 ‘사랑’을 다시 우리 가슴속에 불타게 하라는 비상한 계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이 새 계명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참 사랑이신 나의 주님!
배반하는 제자들이지만,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말씀을, 세상에 없는 새 계명, 아직 나의 삶에 경험하지 못한 그 새 계명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