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금) 말씀 묵상 - 요 13:3-9

♥3월 27일(금) 말씀 묵상

*말씀: 요한복음 13:3-9

6절,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새번역)

*찬송: 사랑하는 주님 앞에(새220/통278장)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처음 받게 되는 직분이 ‘집사’라는 직분입니다. ‘집사’라는 말은 ‘섬긴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집사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구약의 가장 거룩한 직분인 제사장도 본래 섬기는 직입니다. 제사장과 관련된 ‘샤라트’라는 히브리말도 섬긴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직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자신을 ‘집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다고 하셨지요. 그 ‘섬기는 자’라고 번역된 말이 ‘집사’라는 바로 그 말입니다. 식탁에서 주인에게 시중드는 그 ‘집사’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발을 씻기시고, 식탁 시중을 들며 제자들을 받드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식사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식탁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완전 집사 패션입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당황하며 혼비백산했겠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발을 씻기는 일은, 유대인이라면, 종에게도 잘 시키지 않는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태초부터 계셨던 분,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입니다.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드리고, 세상의 모든 보화를 다 바쳐도 예수님을 섬기기에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 다 모른다 해도, 본래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어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법도가 아니고, 어찌보면 질서를 깨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만류합니다. “제 발을 씻기시렵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첫째,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 –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 안에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죽음을 앞두고 계신 예수님이시지만, 사랑하는 이들과는 더욱 깊이 관계하고 ‘상관’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5) –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본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 높아지고 강해져서 섬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섬기는 삶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집사’의 삶입니다.

셋째,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 – 복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된 우리의 복된 삶이 주님의 소망입니다. 그 ‘복’이란 섬김의 삶에 있음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섬김’의 삶이 이 땅을 넘어, 하늘의 복을 허락 받는 비결입니다. 생명과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는 복있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직분이 이런 ‘섬김’의 직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 안에 있는 우리, 이 시대에 참된 예수님의 제자되어 그 삶의 본을 따르는 우리, 그리하여 하늘의 복을 받고 누리는 베다니 ‘섬김’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주님!
어떻게 그렇게 섬기실 수 가 있으셨습니까? 얼마나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내려놓고, 가진 것을 버려야만 무릎을 꿇고 수건을 두르고 발을 씻길 수 있습니까? 이 아침에 주님의 섬김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잊고 있던 ‘집사’의 섬김으로 돌아가 신앙의 기본을 이루어 하늘의 복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jpg